명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대 위의 몇 분을 위해 수없이 많은 평범한 하루가 반복된다. 작업실로 출근해 여덟 마디를 쓰고, 도로 위에서 떠오른 멜로디를 휴대전화에 녹음하며, 음악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들이다.
밴드 유인원의 보컬 우지는 음악을 단순한 감성의 산물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완성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보다 오래 남을 한 장의 음반을 꿈꾸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현실 속에서도 끝내 '인류애적인 사랑'을 노래하려 한다.
기타 대신 충동적으로 구입한 노란 슈퍼커브는 어느새 그의 또 다른 악기가 되었다. 막힌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동 수단인 동시에, 새로운 멜로디가 태어나는 작은 작업실이기도 하다. 음악과 오토바이, 서로 다른 두 세계는 그의 일상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자기소개와 함께 활동명 ‘우지’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밴드 ‘유인원’ 보컬 김우지입니다.
우지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본명은 김도현이에요. 평소에 즐겨하는 게임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우지(UZI)’라는 이름의 총이거든요. 이름이 입에도 착 붙고 강렬한 인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음악 활동 할 때 닉네임처럼 사용하게 됐죠.
만 16세 때 고향인 제주도에서 스승님을 만났어요. 그분께 연주 테크닉이나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깊은 태도와 진정성을 배웠죠. 그때를 기점으로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본격적으로 싹텄던 것 같아요.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싱어송라이터라는 확실한 꿈을 꾸게 됐어요.
솔로로 활동 중에 밴드를 모집했잖아요. 이처럼 음악에 대한 견해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음악에 대한 탐욕이나 욕심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죠. 저희가 단순히 취미로 즐기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음악 산업에 뛰어든 거잖아요. 음악 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저희가 만든 음악을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음악적 방향성이나 곡을 쓰는 본질이 변했다기보다는, 대중과 우리 음악을 연결하는 창구를 더 많이 모색하고 '조금 더 똑똑하게 전략적으로 하자.'라는 마음가짐이 생긴 셈입니다.
활동 중인 밴드 이름 ‘유인원’은 어떻게 지어졌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베이프(Bape)’라는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처음 팀명을 고민할 때 멤버들에게 “우리 밴드 이름 ‘유인원’으로 하는 거 어때?”라고 가볍게 던져봤는데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이후 의미를 붙여봤는데, 현대 사회라는 야생 속에서 끊임없이 버티고 적응해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흔히 사이키델리 락이라고 하면 약에 취한 듯 몽롱하고 해롱대는 소리를 떠올리시는데요. 제가 정의하는 사이키델리 락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봐요. 저희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 가사나 음악적 소리를 통해 각자 내면의 무언가를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팬분들이 가끔 본인의 감정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주실 때가 있는데, 제 의도와 같든 다르든 그 자체로 훌륭한 사이키델리 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범 [Herman]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삼은 이유와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다름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SNS나 일상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비난하고 삿대질하는 모습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거든요. 타인을 향한 시기와 질투, 가혹한 비판이 팽배한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결국 그 혼란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이상향은 ‘인류애적인 사랑’이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때의 심경과 앞으로 꿈꾸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처음 노미네이트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시상식에 다녀와서 든 생각은 '상이 목표가 되면 안 되겠구나.'였어요. 상을 받기 위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 기준이 흔들리고 어지러워지거든요. 제 진짜 목표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마스터피스(명반)’를 만드는 것입니다.
1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오며 느끼는 ‘뮤지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단연 ‘꾸준함’입니다. 사실 자기 일을 잘하고 음악을 잘하는 건 당연한 기본 전제라고 생각해요. 진짜 어려운 건 그다음이죠. 컨디션이나 기분에 상관없이, 매일 작업실로 출근해서 8마디라도 작곡을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음악 산업 안에서 마주한 불편한 순간들도 결국엔 '더 좋은 음악'이라는 본질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차근차근 꾸준하게 제 길을 걸어 명반을 선보이겠습니다.
반년 동안 구매하려고 눈독 들여둔 기타가 있었어요. 게다가 갑자기 공돈까지 생겼죠. 그런데 마침 그날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저희 집에 놀러 온 거예요. 녹사평에서 삼각지까지 태워달라고 해서 아주 잠깐 뒤에 탔는데,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요즘 말로 도파민이 폭발한 거죠.
바로 당근마켓에서 매물을 찾아 다음날 바로 구매했어요. 운전도 할 줄 몰라 겨우 낑낑대며 집 앞까지 데려왔는데, 지금은 제 분신이 됐죠. 팬분들이 '상철이'라는 별명도 지어주셨고요.
추진력이 대단한데요. 오토바이를 타는 경험이 음악 작업에도 영감을 주나요?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에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좋은 탑라인이나 멜로디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때 핸드폰으로 바로 녹음을 해두고 작업실에서 곡으로 발전시키고요. 최근 앨범 [삼사라]에 수록된 곡 중에도 그렇게 탄생한 멜로디가 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오토바이는 막힌 일상을 뚫어주는 가장 훌륭하고 단축된 이동 수단이자 영감의 원천인 거죠.
오토바이는 도로 위에서 상대적 약자잖아요. 지금까지 위험한 순간을 겪은 적은 없었나요?
많아요. '악의를 갖고 일부러 이러나?'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데, 보통 택시 기사님들이 저를 잘 못 보나 봐요. 그분들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서울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적어도 서울 안에서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차도 타고 대중교통도 이용해 봤지만, 보통 절반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보니, 오토바이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거든요.
